[2022 회고록] 1. 나에 대하여

고생했다 나야.

톺아보기

연초에는 스페인에 있었어요. 그때에도 쉬면서 굉장히 다양하고 많은 생각을 했고, 어쩌면 회고여행과 비슷하게 지냈습니다. 한국에 오자마자 퇴사를 했고, 새로운 회사를 찾았습니다. 사실 2022년엔 여러 가지 일이 있었지만 새로운 회사에서의 생활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고 생각해요. 이곳에서의 적응, 신뢰를 얻는 과정, 새롭게 해 본 업무, 마주한 난관 등이 있겠네요.

결론적으로 저는 성장의 측면에서 많은 걸 얻었다고 생각해요. 감사하게도 지금 연차에 경험하기 힘든 일들을 해봤거든요. 인간관계나 건강 등에 있어서 잃은 부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성장이나 재무의 측면에서는 성장을 맛봤다고 할 수 있습니다.

2022년, 과연 잘 살았나

아뇨. 만족할 만큼 잘 살진 않았던 것 같아요. 역시나 내 인생은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습니다.

저는 연초의 의지에 비해서 너무나도 게을렀던 것 같아요. 저는 직장인들 가운데 대한민국 상위 10%에 들만큼 빡빡하게 살았다고 자부할 수 있지만, 퇴근하고 공부하기로 하고 습관처럼 봤던 유튜브 , 아침에 춥다고 안 나간 운동 과 같이 하려고 했지만 못했던 많은 일들의 원인이 불가항력이 아닌 그냥 제가 귀찮고 게을러서 라는 사실이 좀 못마땅합니다.

맞아요. 이렇게 하나하나 다 트래킹 하며 살다 보면 짜증 나고 귀찮습니다. 성취감이 그렇게 높지도 않아요. 행복 효용이 꽤나 낮다는 뜻이죠. 그래도 그 고통 속에서 성장할 수 있고, 멈춰있는 것만큼 고통스러운 일도 없기 때문에 더 낮은 고통을 취한다고나 할까요. 그런 면에서 2022년, 반성 해야 하고, 2023년엔 꼭 달라질 것 을 다짐하고 갑니다.

그럼, 살고 싶은 대로는 살았나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을까요. 일단 적당히 한두 명이 살만한 집에서 조용히 개인시간을 보내고, 일할 시간이 되면 회사에서 최선을 다하며 퇴근하고나 주말엔 기본적으로 자기계발을 하지만 적당히 술약속에 나가거나 모임에 나가는 삶. 운동도 과하지 않을 만큼 하면 좋겠고 그 운동의 목적이 건강뿐만 아닌 재미나 친목을 위해서도였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여자친구가 있으면 더할 나위 없겠습니다.

그럼 이제 시궁창을 들여다볼까요? 새로 이사한 집은 너무 작아서 답답해요. 올해 이사할지 연장할지를 결정해야 하는데 새로운 회사를 가느냐 아니냐에 따라 달라지지 않을까 싶네요. 이사엔 시간과 돈과 에너지라는 비용이 발생하니까요.

회사에선 나름 최선을 다했고 만족합니다. 물론 아직 할게 많이 남았지만 할 만큼 했어요. 적당히 모임에 나가기도 했고, 인싸들처럼 놀진 않았지만 그래도 제 기준엔 많이 놀았습니다. 운동도 하반기긴 하지만 시작은 했고요, 여자친구도 잠깐이지만 있었습니다.

뭐 이 정도면 나쁘지 않았던 것 같네요. 빈둥빈둥 허송세월 보내진 않았던 것 같고, 나름 달렸다고 달렸는데 적당히 성과도 나오고 재미도 있었으니까. 그리고 결과적으로 나는 여러모로 성장했으니 이걸로 일단 만족 입니다.

목표는 다 이뤘나

연초에 2022년 계획을 Personal OKR로 만들어서 공유했었어요. 사실 이 계획부터가 현실적으로 이루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고, 딱히 동기부여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작성한 계획이기도 했지만 달성률만 놓고 보면 적당히 이뤘다고 볼 수 있어요. 회고를 하며 평가해보니 한 50%는 이룬 것 같네요. 이직에 성공했고, 1억 모으기도 달성했으며, 브런치 북 발간하기도 달성했어요.

다만 문제는 저 계획표가 체크하기 귀찮고 항상 눈에 띄는 곳에 있지 않으니 불편해서 잘 안 들어가지더라고요. 뭔가 하긴 해도 저 계획표에는 체크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여담이지만 내년엔 Personal OKR 서비스를 만들기로 했어요. 저 같은 사람을 위해서요!

여하튼 만족하진 않지만 저는 이 정도면 꽤 잘했다고 칭찬해주고 싶어요. 중간에 게을러져서 놀기도 많이 놀았고 번아웃이 와서 방황도 했지만 그 와중에 꽤 많이 달려왔고 이뤄냈다는 사실은 변함없으니까요.

건강

30살이면 건강에 신경 써야 할 나이가 왔다고들 평가해요. 남자들은 특히 탈모 같은 거.. 하하. 저는 머리숱이 많아서 일단 이건 패스하고, 영양제를 챙겨 먹거나 치아 관리를 한다던가 건강검진 결과에 따른 조치를 해야 한다는 거 말이에요. 제가 미루다 미루다 그저께 스케일링을 하러 갔는데 사랑니와 어금니가 상해서 신경치료와 사랑니 발치를 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이게 다 건강에 소홀하고 게을러서 생긴 문제라고 생각하고 반성하게 되었어요.

사랑니 발치로 끝날 일을 신경치료, 크라운 시술까지 받게 되었으니 몸도 아프고 시간도 쓰고 돈도 왕창 깨지는 결과가 발생한 거죠. 치아는 올해 내내 조금씩 아팠는데도 저는 바쁘다는 이유로 방치한 거예요.

올해 처음으로 목이나 허리같이 평생 쓰지만 저 같은 개발자들에게 쥐약인 부분들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어요. 의식적으로 목을 빳빳이 들고, 모니터암을 샀으며 허리도 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자주 가진 않지만 헬스장에서 근력운동도 시작했고요. 내년엔 운동을 하나 더 해야겠어요. 지금 하는 운동부터 일단 잘 나가고 할 말이지만요.

잃어버린 웃음

이번 회고에서 가장 슬픈 포인트는 제가 웃는 법을 잃어버린 것 같다는 것입니다. 혼자 있을 때 호아킨 피닉스의 조커처럼 웃는 것을 말하는 게 아녜요. 어느 순간부터 회사에서 사람을 대할 때 웃음기가 사라져 버렸어요. 스스로 남들과 벽을 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도 있어요. 그리곤 같은 회사 사람인데도 몇몇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사적으로 만났을 땐 또 재밌게 웃고 떠들지만요.

이게 어찌 보면 제가 회사와 동료에 대한 신뢰가 무너져서 그럴지도 모르고, 특정 몇몇 사람들에 대한 실망이 쌓였지만 그들에게만 안 좋게 대할 수 없으니 기본 표정을 깔아 두고 가는 것일 수도 있는데 뭐가 됐든 간에 굉장히 어른스럽지 못하고 성숙하지 못하다 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거짓 웃음을 짓자니 이것도 이것대로 회피하는 것이고 본질을 해결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많이 혼란스럽습니다.

얼른 다시 웃고싶습니다. 큰 변화가 필요할 것 같아요.

자기 객관화

인간관계와 커리어 쪽 회고를 할 때 다시 언급하겠지만 올해 들었던 용어 중 아직도 제 뇌리에서 맴도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정서적 뱀파이어 ,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기술적 정복자 인데요, 제가 자기 객관화를 할 수 있도록 일깨워준 용어들이에요.

변화하는 사람 간의 관계를 통해 나는 상대의 감정을 흡혈귀처럼 빨아들이는 나쁜 사람 이었나 싶고, 내가 했던 모든 일들이 분명 조직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개인의 욕심 이었을 수도 있다고도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모로 제가 하는 일들로 인해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었다고 생각하니 끔찍했습니다.

꼭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지는 않아도 내가 주변사람들의 감정을 빨아가는 암적인 존재일 수 있겠구나 하고요. 물론 이건 부분적일 수 있어요. 대부분의 동료들은 저를 인정해 주었고, 그에 따라 성과도 잘 나왔다고 볼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결과적으로 진짜 같이 일하는 동료들은 남모르게 속앓이를 하고 있었을 수 있고 저 모르게 모여서 불만이나 어려움을 토로할 수도 있는 거니까 제가 원하던 방식으로 흘러가고 있진 않는 것이고, 그 중심에 제가 있다면 제가 그 뱀파이어일 수 있다는 거예요.

그 과정에서 저는 기술적이든 문화적이든 관리의 측면이든 기존의 조직 구성원의 노력과 그간 변화하는 비즈니스 상황을 고려해서 진행되었던 의사결정을 경시하고 새로운 형태를 도입하려고 급진적으로 노력 했던 것 같아요. 그게 아마 기존 조직 구성원의 거부감과 어려움 으로 나타났을 가능성이 높고요. 제가 올해 읽었던 아티클 중 하나가 이런 사람들을 기술적 정복자 라고 부른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어떤 시스템을 도입하기 위해 심사숙고해야 하고, 기존 프로젝트 진행자들에 대한 존중과 이해를 기저에 깔아 둬야 한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정복자에 지나지 않는다고요.


어떤 천둥벌거숭이의 불만 대잔치라고 보셔도 할 말은 없습니다. 저는 그냥 성장통으로 생각할게요. 기준은 개개인마다 천차만별로 다르니까, 이만큼 고민한 것도 부족하다고 보는 사람도 있고 이렇게 생각하고 살 일인가 싶은 사람도 있잖아요.

그냥 연말이 되니까 연중엔 아무렇지도 않았던 내용들이 다 문제가 되는 것 같아요. 이게 회고의 장점인지 단점인지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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