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회고록] 3. 회사에 대하여

다사다난 2022

내 경력은 이제 2년 반 밖에 지나지 않는데 벌써 3번째 회사를 다니고 있습니다. 요즘 2~30대들 직장 빨리 그만둔다곤 하지만 이 정도를 말하진 않았을 겁니다. 자의도 있고 타의도 있지만 퇴사에 있어 명확했던 건 제가 다녔던 모든 회사들이 꼭 마음에 들었던 건 아니라는 점입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다 보면 다니는 직장에 은근히 만족하는 사람이 많은데 말이죠.

이번 글에서는 올해 다사다난했던 제 회사생활 이벤트들을 짚어보고 바뀐 관점을 소개해볼까 해요. 가장 길어질 글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1월, 퇴사!

올해 초 스페인에 다녀오며 커리어와 회사에 관한 생각을 굉장히 많이 했고, 그 과정에서 당시 다니던 회사를 당장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에까지 닿았어요. 나중에 들어보니 제가 그 당시 나가지 않았더라도 퇴사 후 3개월 뒤 회사가 문을 닫았다고 하더라고요. 제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회사에서 정이 떨어지게 된 계기는 사용자 경험을 버리면서까지 돈을 벌고자 하는 속내를 알았을 때입니다. 이런 UX를 다크 넛지라고 부르나 봐요. 가령 애초에 UI를 안 보이게 만든 다음 유료 아이템을 쓰면 잘 보이게끔 하는 UI를 들 수 있겠네요. 이런 회사에서는 돈을 아무리 많이 주더라도 다니면 안 되겠다 생각했어요. 그래서 저는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바로 퇴사를 진행했습니다.

새 회사 찾기

불과 1년 전의 저인데도,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무지몽매하고 어렸어요. 우매함의 봉우리에 있었다고나 할까요. 엔지니어로서의 역량뿐만 아니라, 커뮤니케이션이나 사람을 대하는 자세 등이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뭐 낫냐 하면 그렇지도 않아요. 그저 그런 제 자신을 이제 인지할 수 있는 수준 정도랄까요.

![](http://t1.daumcdn.net/brunch/service/user/aVyy/image/axyCaGlXcW_- WBCWlKhfgxG-CUw.png)우매봉의 끝에서.

이직은 스페인으로 출발하기 전부터 준비해왔던 거라 막막하진 않았어요. 제 직군 내에서 커리어 전환을 시도하다 보니 어려움이 다소 있었지만, 다양한 회사의 문을 두드리고 면접을 진행한 결과 지금의 회사로 올 수 있었죠. 자세한 사항은 글로 정리해두었으니 참고하시면 됩니다.

만만치 않다.

사실 처음 합류했을 땐 순조로웠어요. React & React Native는 제가 해왔던 일이라서 기술적으론 딱히 더 배울 것도 없었고, 프런트엔드만 봤을 땐 기술 수준이 그렇게 높지 않았으며 들어오는 이슈나 업무 쳐내는 게 더 우선인 느낌이라 저도 얼른 적응하고 팀원들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노력했어요. 그렇게 2주 만에 새로운 프로젝트를 맡아서 성공적으로 마무리했습니다. 그게 회사가 바라는 점이었으니까요.

하지만 한두 달 다니다 보니 눈에 보이는 문제가 너무 많았습니다. 히스토리가 있긴 한데, 코드에 너무나 많은 레거시가 있고, 그 흔한 에러처리 하나 해두지 않아서 앱은 툭하면 죽기 일쑤였으며 실수로 앱이 죽어도 어디가 문제인지 찾는데 한세월 걸렸습니다. 문제는 다들 이런 문제엔 관심이 없었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외주업체가 아니라 인하우스 개발자라면, 모두가 프로덕트를 관리하고 어떻게든 사용자에게 좋은 경험을 전달하기 위해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왜 모두가 손 놓고 있었고, 이렇게 필요성을 설파하는데도 아무도 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저는 한낱 기술적 정복자였을지도 모릅니다. 기존 조직의 문화를 무시하고 이상하거나 문제가 있는 건 고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천둥벌거숭이요. 하지만 그땐 이런 생각이 깊지 않아서 필요성을 피력하고 해야 할 개발을 하나씩 해가기 시작했어요.

일 만들어서 하기

저는 이 일들을 하기 위해 필요 이상의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했습니다. 실무도 해야 했기에 주어진 프로젝트에서 최선을 다했고, 남는 시간에 해당 개발을 했으며 문서화를 위해서 야근도 했었어요.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나만 했다는 점과, 지나치게 친절했다는 점에서 정말 멍청하게 일했다는 느낌이 들어요.

진짜 일 잘하는 사람이었으면, 이 업무의 필요성 을 모두가 느끼게끔 소통하고, 다른 일을 멈추더라도 해당 업무는 진행될 수 있도록 여유를 확보 해 다 같이 진행했을 텐데 말이에요. 그렇게 된다면 혼자 하지 않았기 때문에 업무량도 줄어들고, 모두를 이해시키지 않아도 다 이해하고 기술적 장벽도 없었을 것이기 때문에 딱히 문서를 만들지 않아도 되니까요. 하지만 그땐 이런 점에서 부족했었어요.

리더로 일해 보기

저는 위와 같은 일들을 하다 보니 어느 정도 신뢰를 얻었어요. 우리 조직에서 저를 대하는 태도를 보거나 리더와 커피챗을 하고 추후 연봉협상을 재진행하며 다시금 느낄 수 있었거든요. 그 과정에서 프런트엔드 조직에서 경력이 좀 있으셨던 분들이 퇴사하면서 자연스럽게 리더처럼 활동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어요.

그 이후부턴 프런트엔드 관련해서 리더가 해야 할 일들을 다 해왔다고 생각해요. 우선 개발이나 업무 관련 회의를 주최하고 비즈니스 이외에 사용자 경험 개선을 위한 노력을 진행했습니다. 문서 관리에 힘썼고요, 오류나 장애상황에도 일선에서 대응했고 관리 체계 또한 구축했습니다. 잘 되진 않았지만 리더의 입장에서 커뮤니케이션을 해보려고 노력했어요. 기술적으로도 가장 많이 아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개발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면접관으로서의 경험도 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조직과 잘 맞는 사람을 뽑기 위해 고민도 많이 했거든요.

하지만 저는 지금 이 자리에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올해 제가 리더로서 성공적이었냐고 한다면 고생은 했지만 100점 만점에 10점 정도 주고 싶다 고요. 다 잘 될 거라고 근거 없는 확신 을 가지고 일을 해왔던 것 같아요. 모두가 다 따라 올것이고, 내가 하는 만큼 서로 도울 거라고요. 결과적으로 현재 저희 팀원들은 조직에서 부여받은 일 이외엔 딱히 관심이 없었고 그 업무가 바쁘면 피드백도 없습니다. 중요한 점은 이게 틀렸다는 게 아니라, 제가 바랬던 모습과 다르다는 거예요. 어쩌면 우리 조직과 내가 결이 안 맞을 지도 모른다는거죠.

조직 구조와 문화

올해는 조직문화에 대해서 정말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저는 여기서 처음으로 목적 중심 조직 이라는 조직 구성을 경험해 봤어요 기존엔 기능 중심 조직 에만 있어봤거든요. 처음엔 그저 큰 변화에 신기하고 생소한 감정이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조직문화가 리더나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실감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실무를 진행함에 있어 장단점이 눈에 보이기 시작하니까 변화된 이 구조와 문화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되더라고요.

결론적으로 저는 현재의 조직 문화에 대해 비판적으로 바라봤어요. 링크된 글에 꽤 자세히 적어놨으니 여기에선 결론만 말하자면, 개개인에게 그 사랑의 자율성을 믿고 맡길 수준이 아니면 효율을 내기 힘든 구조다 입니다. 그래서 다음 회사는 잘 동작하는 목적 중심 조직에서 일해보고 싶기도 해요.

조직의 빡빡한 관리체계개인의 자율성 은 양극단에 서있는 개념이에요. 삼성같이 빡빡한 관리가 이상적으로 동작하는 조직도 있고, 토스같이 개인의 자율성을 부여했을 때 이상적으로 동작하는 조직이 있죠. 즉, 정답은 없어요. 그저 사람을 믿지 말고, 상황을 믿어야겠죠.

채용

올해는 제가 면접관으로서 첫 경험을 한 해입니다. 리더들끼리 어떤 사람이 좋은 개발자일까, 좋은 동료일까를 고민하고 문서화했어요. 이에 대해 개인적으로 정리한 글도 있답니다. 지금까지 이력서만 100장을 넘게 검토했고, 거의 10~20명은 면접을 본 것 같아요. 기존에 면접자의 입장에서와는 달리 면접관으로서 참여해보니 여러 차이점이 눈에 보였습니다.

첫 번째로는 본인의 생각이 뚜렷한 사람이 별로 없다고 느꼈어요. 어떤 점에서든 본인이 어떤 사람이고,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는 사람인지에 대한 설명이 없었고 면접 때 물어봐도 딱히 의미 있는 답변을 받았던 기억이 없어요. 본인의 생각이 명확하지 않은 사람은 의사결정이나 커뮤니케이션의 단계에서 분명히 문제가 발생할 것이니까요.

두 번째, 알량한 기술 질문은 의미가 없다입니다. 5 whys 라는 문제 해결 방법론에 대해 들어보셨을 거예요. 간단히 말하면 본질을 해결해야 진짜 문제를 해결한 것이다라는 뜻이에요. 기술적으로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건 그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 중 하나일 뿐이고, 실제로 몇몇 문제는 코드 한 줄 작성하지 않고도 문제를 해결 할 수도 있어요.

즉, 풀고자 하는 문제와 기술적 해답 은 100%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그런 점에서 문제 해결 능력을 확인해야 하지 기술적 우월함 을 증명하는 건 올바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물론 기술적 역치가 있는 조직이라면 뭐 인정합니다. 대화가 안 통할 수준의 엔지니어라면 엔지니어 조직과 맞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이게 1순위는 아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세 번째는 좋은 개발자를 뽑기 위한 조건 중 기술적 역량은 그렇게 높은 포션을 차지하지 않는다는 점이에요. 아무리 좋은 엔지니어라도 기술에 매몰돼버린 사람일 수도 있고 커뮤니케이션에 하자가 있는 사람일 수도 있으니까요. 우리는 좋은 동료를 뽑는 것이지 훌륭한 엔지니어를 뽑는 게 아니에요. 시키는 일만 잘하는 나사못은 언젠간 녹슬고, 새 나사못으로 갈아치워 집니다.

이렇듯 새로운 동료를 구하는 기준은 꽤나 깐깐하게 유지했던 것 같아요. 그렇다고 저희가 그런 사람들만 모여있다고는 절대 말 못 하지만 이렇게 높은 기준을 요구했던건 이를 충족하는 사람들이 들어와서 보여줄 정화효과를 기대했다고도 볼 수 있죠. 하지만 우리 눈에 좋은 사람은 남들에게도 좋은 사람이었을까요. 올해 프런트엔드 개발자는 딱 2명밖에 채용하지 못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오늘에서야 다시 지원자로서의 나 를 바라볼 수 있었어요. 나는 좋은 개발자인가? 나는 좋은 동료인가? 나는 문제해결 능력을 갖췄나? 커뮤니케이션은? 조직 문화에 대한 관점은?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을 못하더라도, 꾸준히 답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을 통해 성장할 수 있는 거니까요. 너무 조급해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회사를 구하는 기준

언젠가 저도 지금 이 조직을 떠나 다른 조직에 몸담게 될 거예요. 하지만 이직이라는 게 생각보다 고려할 것도 많고 과정도 순탄치 않습니다. 그래서 한번 옮겼을 때 마음에 드는 곳으로 옮기고 싶고, 오래 다니고 싶죠. 그러려면 내가 원하는 회사를 고르는 기준 이 있어야 하고 실제로 그런 회사인지 확인할 수 있는 안목 이 필요합니다. 골랐다면 어디든 뚫고 들어가 갈 수 있는 실력과 자신감 은 당연하고요.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작년에도 이직을 앞두고 비슷한 고민을 했었는데 답지를 적어내려고 하니 지금은 또 다르네요. 지금 적어보는 이 기준들도 내년 되면 달라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해요.

첫번째로 저는 합리적인 집단 에서 일하고 싶어요. 의사결정을 할 때 얼렁뚱땅 좋은 게 좋은 거지 뭐 하면서 넘어가는 것도 싫고, 친하다는 이유로 스르륵 진행되는 업무도 지양합니다. 성과나 고생에는 보상이 따라왔으면 좋겠고 모두가 그런 생각을 기저에 깔아 둔 집단이면 좋겠어요. 불만은 터놓고 말하고, 어떤 방식으로든 합리적으로 해소되는 집단이요. 각자가 속한 집단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불만은 쌓이기 마련이거든요.

두 번째는 자율성 이에요. 자율성을 부여한다는 것은 우리를 믿는다는 뜻이니까요. 저는 신뢰를 얻었다는 기분이 드는 순간 능률을 발휘하는 사람이라서 빡빡한 관리를 하는 조직과 맞지 않아요. 신뢰를 얻는 과정은 꽤 험난하겠지만 그 과정을 거치고 나면 신뢰를 얻고 날개를 달 수 있어요. 또한 그런 집단의 구성원들은 신뢰할만한 사람들이라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어서 동료에 대한 믿음 또한 검증레벨이 낮아진다고 볼 수 있어요.

세 번째는 다양한 외부요인 을 볼 것 같아요. 집하 고는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복지는 어떤지, 연봉도 정말 중요하죠. 오너의 의지도 굉장히 중요하게 봅니다.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는 사람인지와 함께하고 싶은 동료상 같은 기본적인 내용부터 사업에 대한 확신, 확장성 같은 비전을 확인해볼 것 같아요. 내가 합류한다면 속하게 될 조직에 대해서도 물어볼 것 같아요. 기술적인 결단을 내릴 때의 의사결정 방식이나 업무 프로세스나 관리, 기능조직 활동 같은 부분이요.

모든 기준을 충족하는 회사는 없을 것이고, 제가 그만한 회사에 들어갈 깜냥이 안될 수도 있지만 최대한 비슷한 곳으로 옮겨보려 합니다. 지금 회사에서 얻은 모든 것과, 가진 불만을 망라해서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지금 이런 글을 적고 있는 것이니까요.

느낀 점

고작 1년을 돌아보는데도 회사라는 게 우리의 깨어있는 하루들을 80% 이상 점유하고 있다 보니 짧은 기간이더라도 깨달은 점도 많고 그만큼 말하기 조심스럽기도 해요. 하지만 그럴수록 점점 명확해지고, 기준이 확고해짐을 느껴요. 확실한 점은 저는 작년 이맘때에 비해 말도 안 되게 성장했다는 점이에요. 몸은 힘들었고 마음은 괴로웠지만, 더 단단해졌다고 스스로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Copyright © HOJUN I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