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회고, 준비하기

우리는 어디서 왔고, 우리는 무엇이며,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회고를 준비하며

매년 마지막 주는 통째로 조금은 심혈을 기울여서 보내려고 노력합니다. 사실 그렇게 의미부여 안 해도 지나갈 시간이고 너무 신경 쓰지 말라고들 하지만 아무리 의미를 붙이지 않으려고 해도 어쩔 수 없나 봐요. 괜스레 울적해지기도 하고 센치해집니다. 그럴수록 더더욱 아무 생각 안 해야 하는데,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세요라고 하면 그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통통한 코끼리가 떠오르듯 말이에요.

그럴 바에야 그냥 확실히 센치하게 보내자 싶어서 최근 몇 년간은 특별한 마지막 주를 보내고 있습니다. 작년까지는 그냥 마지막 주에 매일 퇴근하고 카페에서 신년계획을 짜거나 간단한 회고를 하곤 했는데, 이번엔 아예 회고여행 을 떠나려고 해요. 대단한 건 아니고, 작년처럼 퇴근하고 두세 시간 깔짝 하기엔 시간과 여유가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생각하고 글 쓰는데 집중할 수 있는 곳으로 잠깐 다녀오려고요. 고민의 깊이와 범주가 방대해졌다는 것은 그만큼 버라이어티 하고 강렬한 1년을 보냈다고 봐도 되겠죠.

우리는 어디서 왔고, 우리는 무엇이며,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이번에 맞이할 신상 연도는 2023년입니다. 검은 토끼의 해라고 하네요. 이밖에도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겠지만 제가 한국나이로 30살이 된다는 의미 이외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30은 다른 나라에서는 몰라도 대한민국에서는 꽤나 상징적이잖아요. 작년 하고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생각이 드는 것 같아요.

제목으로 선정한 우리는 어디서 왔고, 우리는 무엇이며,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는 폴 고갱의 작품 이름입니다.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고 자살을 앞둔 고갱이 심혈을 기울여서 만든 작품이라고 알려져 있어요. 다만, 저는 이 작품의 미술사학적, 철학적 관점을 인용하거나 바라는 게 아닙니다. 그저 이와 같은 질문을 절실히 고민하고 작품으로 해소해냈다는 사실이 우리가 짧든 길든 인생을 회고하고 나아가는 모습 과 매우 비슷하다고 여겨져서입니다.

http://t1.daumcdn.net/brunch/service/user/aVyy/image/YO8vWdSjtLg0rAB51Fr0ayRFDzw.jpeg오른쪽의 아기부터 왼쪽의 노파까지

저 또한 그런 마음으로 나를 절실히 돌아보고 올바른 방향과 최대한 비슷한 곳으로 나아갔으면 합니다. 이번 회고가 성공적으로 끝나고 좋은 계획을 가지고 2023년을 맞이하기를.

다음의 항목들을 회고하고 글로 남길 생각입니다. 회고여행을 하기 전에 다음과 같이 고민의 덩어리를 나누고 해당 챕터에 해당하는 질문을 모아 왔습니다. 근 1달 정도 모은 것 같아요. 미리 질문지를 작성해두고 답을 하는 방식은 이번에 처음 해보는데, 좋은 효과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1. 나에 대하여

올해는 많이 슬펐어요. 몇 달간은 전속력으로 달려봤거든요. 근데 사람 마음도, 실력도 신뢰도 놓쳐버린 것 같다는 의심이 생겨버렸기 때문입니다. 물론 친구들이나 회사 사람들은 제 노력에 박수를 쳐줬지만 그게 다가 아니라는 사실이 회복을 더디게 하는 것 같습니다.

몇몇 리더들과의 대화에서 현재 상황에 대해서 공유하고 답을 구해봤는데, 당연하게도 답을 주시진 않았지만 그래도 자기 객관화를 조금이나마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 이에 대한 내용도 적어볼게요.

사실 바쁜 와중에 몸과 마음이 많이 상했는데, 매일 회복되지 못한 채로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하다 보니 항상 행복하진 않았습니다. 제가 배운 개념에 의하면 이런 사람은 회복 탄력성이 부족한 것인데 이제 이에 대한 관리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마냥 죽는소리만 할 순 없으니까요. 이와 연계하여 이루지 못한 목표나 루틴 없는 생활, 웃음을 잃어버린 계기 등을 곰곰이 생각해볼까 합니다.

2. 이직, 커리어, 성장

커리어를 위해 정말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잠깐 돌아보니 노는 시간이 꽤 많았고 귀찮아서 그냥 쉬어버린 날들이 눈에 밟혔습니다. 물론 성장에 있어서 저는 올해 커리어 하이를 찍었다고 생각할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많은 성과를 이뤄냈습니다. 내년에도 폭발적인 성장을 할 수 있도록 더욱 꼼꼼히 되돌아볼 생각입니다.

올해 면접관으로서 여러 경험을 해봤는데요, 반대로 지원자로서의 나는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 생각해보려 합니다. 그리고 면접관으로서 어떤 면접자를 뽑고 싶었는지를 생각해 보고 제 성장 방향을 돌아보겠습니다.

정서적 뱀파이어 , 기술적 정복자 등 올해 들은 충격의 단어들이 있습니다. 앞으로 적을 회고록에 설명하겠지만 이런 몇몇 용어나 개념들을 통해 내가 지켜야할 스탠스들을 정리해볼까 합니다. 좋은 사람에 가까워지기 위한 노력이라고 봐도 좋겠어요. 실력은 당연한 거지만 그게 다는 아니니까요.

마지막으로 구체적인 활동들에 대한 생각을 해볼게요. 토이 프로젝트와 스터디, 블로그, 독서모임, 책 읽고 기록하기, 브런치에 글쓰기 등 여러 활동들을 해왔는데 전반적으로 많은 것을 이뤘지만 그만큼 포기한 사항도 많습니다. 냉정하게 평가하고 내년을 기약해 보려고요.

3. 회사

개발자로서 3번째 회사에 3월에 합류했습니다. 이제 10개월 정도 다녔는데, 노력도 노력이지만 운 좋게 역량을 빠른 시간 내에 보여줄 수 있었고, 신뢰를 쌓을 수 있었어요. 조직 리더의 부재로 리더의 역할도 경험해 봤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생각보다 저는 회사에서 중요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뭐, 그렇게 생각할래요. 결국 회고하고자 하는 내용은 나는 회사에서 뭘 했나 입니다. 그리고 뭘 더 할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해볼래요.

채용에 관한 부분도 돌아보고 싶습니다. 우린 좋은 사람 들을 채용했는가, 그리고 우리의 채용 기준대로 일하고 있는가. 합류하신 모든 분들이 마음에 들진 않았습니다. 적어도 부족한 사람을 일단 뽑았다 싶은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같이 일해보니 많은 부분이 맞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더 나아가 요즘은 우리 스스로를 돌아봐야 할 시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가 그런 사람들을 뽑을 자격은 되는 건가.

외람되지만 나 스스로 이 조직과 잘 맞는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회사, 사람들, 리더, 조직 구조, 내가 조직과 어울리는지는 어떻게 평가할까요. 다음 회사를 생각한다면 올해 회고 때 꼭 생각해보고 넘어가야 할 것 같네요.

4. 돈

고등학생 때 막연히 생각했던 목표인 30살 전에 1억 모으기를 마치 영화같이 29살 12월 마지막 월급날 달성했어요. 운이 꽤 좋았거든요. 운이 좋았다고 재테크에 성공한 건 아니고요, 회사에서 생각지도 못한 성과급을 받아서 달성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6월쯤에 했던 연봉협상도 꽤나 큰 영향을 줬습니다. 사실 소비도 그만큼 생각해서 썼어야 하는데 그렇지는 못했습니다. 내년엔 재무적으로 다양한 부분을 고려해서 살아갈 생각입니다. 기본적으로 급여와 소비, 연금, 보험, 저축이나 투자 등을요. 1억 모으기 , 그다음은 뭘 하면 좋을지까지 생각해볼까 합니다.

5. 인간관계, 나 이외의 사람들

역대급으로 인간관계에 대해 많은 것을 느낀 1년이었습니다. 이전까지 만났던 사람들과는 확연히 다른 개성과 실력을 가진 사람들을 회사에서 만났고, 모임에서 만난 새로운 친구들 등등 러프하게 생각해봐도 꽤 많아요. 하나하나 돌아볼 순 없겠지만 전반적으로 내가 쌓은 신뢰와 관계 에 대해 돌아볼래요.

인간관계에 대해, 리더로서 혹은 친구로서, 좋은 사람이었는지. 어떻게 평가할지는 모르겠네요. 사람 마음이라는게 정량적으로는 마주할 수 없으니까요. 물론 정성적 데이터로도 어떻게 표현하겠습니까. 그저 스스로 돌아봤을 때, 상대방과 마주할 때 느꼈던 감정들을 돌아보는 수준일겁니다.

올해 핫한 키워드였던 조용한 사직(Quiet quitting), 제가 힘들어했던 부류 중 하나였는데요. 대표적으로 이 부류의 사람들에 대해 고민해보려고 합니다. 더 나아가 내가 마주할 사람들에 대해서도요. 어떤 리더분과의 커피챗에서 저에게 "당신은 어떤 집단에서도 만족할 수 없을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는데, 저를 돌아보게 만든 말이었거든요. 조용한 사직 혹은 그 이상의 것을 하는 사람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방법을 찾아라. 한번 생각해봐야겠어요.

Outro. 에필로그

이 글을 쓰는 시점에는 아직 시작도 안 했지만 회고를 마치면 어떤 감정이 들까 싱숭생숭하네요. 혹자는 회고가 쓸데없는 시간낭비라고 하지만 저는 며칠을 투자해도 아깝지 않은 활동이라고 생각해요. 에필로그에는 회고의 회고(?)가 되겠네요. 뭐 느낀 점 적기 같은 시시껄렁한 글이 되겠지만, 저는 회고에 이어 내년 계획을 세우는 활동을 할 것이기 때문에 전반적인 회고 정리 및 내년 전략 설정에 대한 글이 되겠네요.


이렇게 회고에 대한 준비를 마쳤습니다. 얼마나 알찬 시간이 될지 기대가 됩니다. 저는 2022년 12월 28일부터 1월 1일까지 회고 여행을 갑니다. 주변에 아무도 없는 조용한 산골로 가고 싶었는데 산골감성을 박살 내버리는 숙박비 덕분에 이건 내년으로 미루고, 일단 시골 펜션으로 갈 생각이에요. 다음 글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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