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ucial Conversation(결정적 순간의 대화)

감정과 이해관계가 결정적 순간의 대화를 만든다

제가 속한 조직에 새로 온 리더의 소개 세션에서, 그분의 커리어에 도움이 되었던 책 3권을 알려주었는데 그중 하나가 Crucial Conversations였다. 한국어 제목은 《결정적 순간의 대화》이다. 나온 지 거의 20년이 되었고 한국에 소개된 지도 1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날카롭고 상세한 관점으로 통찰력을 주는 책이었다.

crucial conversations

제목에서도 나타나듯 이 책은 Crucial Conversation이라는 특수한 대화 상황을 다룬다. 솔직히 일상적인 대화나 업무에서의 의사소통에서 문제가 발생하기란 쉽지 않다. 아마 수많은 반례를 통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나와 성향이 매우 다르거나 성격이 괴팍한 사람들이 아니라면 대부분의 경우에 무난하게 대화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친절함도 지능이니까.

그럼 Crucial Conversation이란 어떤 대화를 말하는 걸까? 저자는 결코 이 용어를 두루뭉술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아래 3가지 조건에 맞는 대화가 Crucial Conversation이다.

  • 서로 의견에 차이가 있고
  • 중요한 이해관계가 있으며
  • 감정이 격해질 때

이 조건은 책의 서문에서 나온다. 첫 두세 페이지를 읽는 순간 이 조건에 맞는 수많은 대화가 스쳐 지나갔다.

"중요한 이해관계가 걸려있고 의견이 다양하며 감정이 격하게 흐르기 시작할 때 일상 대화는 결정적 순간의 대화로 바뀐다. 아이러니하게도 결정적인 대화일수록 우리가 대화를 효과적으로 나눌 가능성은 작아진다. 결정적 순간의 대화에 실패하면 직장부터 경력, 공동체, 인간관계, 건강까지 삶의 모든 측면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지체 시간이 길어질수록 악영향을 끼칠 여지는 더 커진다. 하지만 좋은 소식도 있다. 일련의 효과적인 기술로 결정적 순간의 대화를 발전시키고 잘 해내는 법을 배우면 그것이 우리 삶의 거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 서문에서

감정의 개입

특히 조건 중에 "감정이 격해질 때"에 크게 공감했다. 우리는 동물이기에 성향과 훈련의 정도에 따라 감정에 영향을 받는다. 간혹 평소에도 감정이 격해져 있거나 감정을 이입하는 대화를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에게 감정은 방어 기제에 따라 자동으로 발현된다. 특히 업무 대화에서는 부당한 지시를 받거나 연봉 협상, 1 on 1 등 나와 회사 혹은 동료 간 이권을 다루거나 내 성과, 업무량에 영향을 주는 경우 감정이 개입할 확률이 높다.

보통 이런 상황을 컨설팅한다면 사람이 이성적인 동물이라고 가정한다. 마치 [허드슨 강의 기적]이라는 영화에서 사고 현장을 시뮬레이션하는 사람들처럼, 인적 요소를 배제한 것처럼 말이다. 이 책에서는 그 부분을 인정하고 시작해서 인상적이었다. 물론 이 책에서 하는 메시지를 엿보면 높은 텐션을 유지하면서 합의를 이루어낼 수는 없다. 다만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와 동기부여를 얻을 수 있다.

책에서 이 부분을 "생각은 전기적이지만 감정은 화학적이다"라고 한마디로 정의한다. 무릎을 탁 치지 않을 수 없다.

문제 정의의 중요성

책에서 부적절한 대화를 나누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 3가지로 아래 조건들을 내건다.

  • 감정이 고조된다.
  • 회의적인 마음으로 자리를 뜬다.
  • 예전에 이런 대화를 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물론 더 많은 충분조건(sufficient condition)들이 있을 것이다. 그보다도 중요한 것은 어떤 방법론으로 헤쳐나가느냐인데, 우선 문제 재정의부터 해야 한다고 한다. 여기서는 방법론을 굉장히 구체적으로 지정해 주었는데, 아마 외우기 쉽게 만드느라 굳이 단계를 나누고 약어를 만들었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었다.

  • 구분하기: 현재의 문제가 CPR(Content, Pattern, Relationship) 중 어떤 것에 속하는지 알아낸다.
  • 선택하기: "내가 가장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현재 가장 적절한 문제를 선택한다.
  • 단순화하기: 선택한 관심사를 한 문장으로 압축해 대화를 시작하고 초점을 유지한다.

이렇게 문제를 재정의하고 그 문제에 초점을 맞춤과 동시에 유연성을 발휘할 줄 알아야 한다. 화제를 바꾸기로 결정하고 착수했다면 다시 돌아가기 쉽도록 원래 화제를 '북마크' 하라는 깨알 같은 팁도 있었다. 이 부분에서 디테일함에 감탄했다. 실제 대화를 하다 보면 이런 대화는 문제 해결에는 효과적일지 몰라도 관계에 있어서는 자칫 치명적일 수 있다. 승자와 패자가 나타나는 것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원래의 화제로 되돌아가는 파이프라인을 뚫어 놓는다는 개념은 꽤나 신선했다.

싸우거나 도망가기(fight or flight)

Crucial Conversation의 결과에 따라 승자와 패자가 있다고 가정한다면, 전략적으로 서로는 싸우거나(Fight) 도망가는(Flight) 선택을 할 수 있다. 협상의 도구로서 이게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무엇인지 알고 알아차릴 줄 알아야 하며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 fight or flight는 의도적으로 정보를 공유하지 않는 행위이다. 잠재적 문제를 피하기 위해 쓰이며 의미의 흐름을 방해한다. 아예 말하지 않기나 말장난하기 등을 총망라한다.

공격하기

다른 사람을 설득, 지배하거나 자신의 관점을 강요하려는 목적의 언어적 전략이다. 솔직히 이 파트를 읽으며 이거 완전 트럼프 그 자체인데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과가 좋다면 사람들은 박수를 쳐주겠지 하는 생각에 다다라 기분이 좀 언짢아졌다.

  1. 조종하기: 다른 사람에게 생각을 강요한다. 말을 가로채거나, 사실을 과장하거나, 절대적으로 확신하며 말하거나, 주제를 바꾸거나, 지시하듯 질문한다.
  2. 꼬리표 붙이기: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에 꼬리표를 붙인다.
  3. 위협하기: 공격적인 언어를 사용한다. 윽박지르거나 비꼰다.

도망가기

도망가기는 마치 협상에서 내 카드를 숨기는 것을 통칭한다고 느껴졌다. 훌륭한 카드가 될 수는 있지만 상대방에게 이 수를 읽히는 순간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할 것이라 생각한다.

  1. 피하기: 민감한 주제를 멀리한다. 대화는 지속해도 진짜 문제는 건드리지 않는다.
  2. 의견을 축소해서 말한다.
  3. 넌지시 말한다.
  4. 돌려 말한다.
  5. 선택적으로 내비친다.
  6. 발 빼기: 대화에서 완전히 빠진다. 한마디도 안 하거나 물리적으로 벗어난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에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저자는 이 상황이 안전감(Safety)을 잃어버렸다고 보고, Safety Zone을 형성하는 장치를 발동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안전지대 만들기

fight or flight 신호를 포착했다면 그 대화에서 빠져나와 안전지대를 만든다. 대화에서 한 발 물러나 불안을 없앤 뒤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가령 대화를 하다가 상대가 침묵이나 공격으로 일관하면 일단 대화에서 빠져나와 안전지대를 만든다. 안전감을 회복하면 화제로 돌아가서 다시 대화하면 된다.

  • 공동 목적: 다른 사람들이 대화에서 당신이 그들의 목표에 관심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들이 당신의 동기를 신뢰하는가?
  • 상호 존중: 다른 사람들이 당신이 그들을 존중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1. 당신의 좋은 의도를 공유한다. 대화를 순조롭게 시작하려면 나의 긍정적인 의도를 알려야 한다.
  2. 사과할 때는 사과한다. 내가 실수했다면, 존중하지 않았다면 사과한다.
  3. 대조 기법으로 오해를 바로잡는다. 내가 의도하지 않거나 의미를 두지 않은 것을 먼저 말하고 해명한다.
  4. 공동 목적을 만든다. 서로의 뜻이 어긋날 때는 공동 목적을 만든다.

어쩌면 당연해 보일 수 있는 이 해답은 상대가 공격하거나 도망가려는 정신없는 상황에서 'Safety Zone을 만든다'라는 핵심 개념을 머릿속에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효과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것도 뚫지 못할 벽을 향해 공세를 취하기보다는 벽을 흐물흐물하게 만드는 전략은 충분히 합리적이다.

스토리 관리하기

스토리라는 개념은 흔히 이력서를 쓸 때 많이 언급된다. 그냥 사실을 적시하는 것보다 이를 뒷받침하는 스토리는 설득력에 준하는 감정적 동요를 일으킨다고 알려져 있다. 이는 Crucial Conversation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사실을 관찰한 후 그에 대한 스토리(해석)를 만들고, 이 스토리가 감정을 형성하여 행동으로 이어진다. 이 과정을 '행동 경로 모델'이라고 한다.

저자는 아래의 3가지 방법론을 제시하며 대화에 스토리를 녹여낼 수 있게 돕는다.

  1. 스토리 인식하기: "어떤 스토리를 말했길래 이런 감정이 생겼는지" 자문한다.
  2. 사실과 해석 분리하기: 객관적 사실과 주관적 해석을 구분한다.
  3. 부정적 스토리 경계하기: 다음과 같은 유형의 스토리는 대화에 방해가 된다:
    • 희생자 스토리: "내 잘못이 아니야, 난 잘못 없어"
    • 악당 스토리: "이건 모두 네 탓이야, 네가 나쁜 사람이라서 그래"
    • 무기력자 스토리: "어쩔 수 없어, 다른 대안이 없었어"

충분히 설득력 있는 의견이라고 생각하고, 잘 써먹는다면 효과가 좋을 것 같다. 다만 나는 이를 대화에 적용하기란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러려면 굉장히 두뇌 회전이 빨라야 하지 않을까? 대화를 회고할 때나 써먹기 좋을 것 같다.

마치며 : 진심으로 말하기

"상대방이 진심으로 잘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결국 이 책에서 말하는 안전지대 만들기니, 스토리 관리니 하는 여러 기술들도 이 마음가짐, '진심'이 바닥에 깔려 있어야 진짜 효과가 있는 것 같다. 그냥 기술만 기계적으로 써서는 안 되고, 정말로 상대방과 함께 좋은 결과를 만들고 싶다는 그 마음 말이다.

물론 말처럼 쉽지는 않을 것이다. 감정이 잔뜩 얽히고 이해관계까지 걸린 '결정적 순간'에 이런 '진심'을 유지하고 표현하는 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닐 테니. 솔직히 앞서 스토리 관리 부분에서 느꼈던 것처럼, 이걸 실시간 대화에서 다 써먹으려면 머리가 정말 빨리 돌아가야 할 것 같다. 어쩌면 대화가 다 끝난 뒤에나 '아, 그때 이렇게 했어야 했는데' 하고 복기할 때 더 유용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역시 중요한 건 이 '진심'이라는 생각은 든다. 이게 있어야 상대방도 조금은 마음을 열고, 꽉 막힌 대화에서 뭔가 풀릴 실마리라도 보이지 않을까? 책에서 배운 기술들을 써먹어 보려고 노력하는 동시에, 결국은 이 '진심으로 말하기' 자체를 연습하는 게 이 책을 제대로 내 것으로 만드는 길인 것 같다. 어쩌면 이게 가장 어려운 숙제일지 모른다.